[동아일보] 공사장 난간 이동중 “악~”… VR 안전교육 생생
최고관리자
2019-02-18 14:24
8,608
-
10602회 연결
본문
동아일보
공사장 난간 이동중 “악~”… VR 안전교육 생생
서울 강동구 암사동 광역철도 별내선(서울지하철 8호선 연장) 건설 현장. 최근 이곳을 찾은 동아일보 기자는 총 3번 죽었다. 모두 추락사였다.
첫 번째 추락은 지상 수십 m 비계에서 안전난간을 잡고 이동하다가 벌어졌다. ‘아악’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질렀다. 눈앞으로 갑자기 하늘이 솟구쳤다. 추락하는 순간 ‘난간도 잘 붙잡고 있었는데 뭘 잘못했을까’ 원인을 떠올려 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자재들이 널브러진 땅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직구명줄을 안전대에 걸지 않은 채 이동 중 실족해 추락, 사망했습니다.”
사고 원인을 알려주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안전대(安全帶)는 추락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근로자가 매는 보호장구다. 두 다리를 끼워 넣는 안전그네와 로프(수직구명줄), 고리로 구성됐다. 기자는 안전대 고리에 로프를 제대로 걸지 않고 걷다가 발을 헛디디자 그대로 수십 m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두 번째 사고는 문턱 형태의 발끝막이판이 주변에 설치되지 않은 개구부(발판 바닥에 뚫린 구멍)에서 추락해 일어났고, 철골 조립 작업을 하다가 작업 순서를 지키지 않아 하중이 한쪽으로 쏠려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추락해 세 번째 숨졌다.
기자를 세 번 죽인 안전사고는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VR·Virtual Reality)에서 발생했다. VR 안전교육 프로그램 속에서다. 현실의 건설 현장을 본떠 재현한 인공현실이다. 하지만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눈앞에 가상세계를 보여주는 기기를 머리에 쓰면 실제처럼 생생하다. 고개를 돌리는 대로 공사 현장이 상하좌우 360도로 보인다. 공사 현장 관리사무실에서 걷고 있지만 가상현실에서는 높은 곳의 발판을 아슬아슬하게 걷는다. 어지러워 몸을 휘청거릴 정도다. 추락 후 설치되지 않았던 안전시설물이 붉은색 그래픽으로 표시되고 안전수칙 상식이 눈앞에 퀴즈 형식으로 나타난다.
VR 안전교육 프로그램은 2012년부터 민간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개발했다.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활용한 프레젠테이션(PPT)이나 동영상으로 진행되는 기존 교육 방식만으로는 근로자의 주의를 끌기 어려워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부터다. 최근에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도 VR 안전교육 프로그램 20여 개를 자체 개발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29일 사업비 50억 원 이상의 시가 추진하는 신규 건설 현장에는 VR 안전교육을 올해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별내선 공사 현장에 시범 도입해 운영해 본 결과 현장 근로자 48명 가운데 40명이 ‘매우 만족했다’고 응답했다. 시공사인 쌍용건설의 현장 관계자는 “빨리빨리 문화가 현장에 만연하다 보니 작업에 방해가 되는 시설물을 치우는 데 게으른 것 등 안전을 무시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VR 안전교육으로나마 사고를 경험하면 더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건설 안전사고가 대부분 발생하는 영세한 공사 현장은 안전 사각지대가 되기 쉽다. 서울시가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사업비가 50억 원 미만인 곳은 VR 안전교육은 도입되지 않는다. 올해 시가 착공하는 신규 사업장 20곳 중 사업비가 50억 원 미만인 곳은 4곳이다. 공사 중인 곳까지 합쳐 현장 98곳 가운데 49곳이 해당한다. 서울시는 “소규모 공사 현장을 방문하는 이동식 VR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검토하겠다”며 “VR 기기 구매에만 400만 원이 넘게 드는 예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VR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시에서 자체 개발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등 세부사항을 조만간 결정할 예정이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공사장 난간 이동중 “악~”… VR 안전교육 생생
서울 강동구 암사동 광역철도 별내선(서울지하철 8호선 연장) 건설 현장. 최근 이곳을 찾은 동아일보 기자는 총 3번 죽었다. 모두 추락사였다.
첫 번째 추락은 지상 수십 m 비계에서 안전난간을 잡고 이동하다가 벌어졌다. ‘아악’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 나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질렀다. 눈앞으로 갑자기 하늘이 솟구쳤다. 추락하는 순간 ‘난간도 잘 붙잡고 있었는데 뭘 잘못했을까’ 원인을 떠올려 봤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자재들이 널브러진 땅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직구명줄을 안전대에 걸지 않은 채 이동 중 실족해 추락, 사망했습니다.”
사고 원인을 알려주는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안전대(安全帶)는 추락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근로자가 매는 보호장구다. 두 다리를 끼워 넣는 안전그네와 로프(수직구명줄), 고리로 구성됐다. 기자는 안전대 고리에 로프를 제대로 걸지 않고 걷다가 발을 헛디디자 그대로 수십 m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두 번째 사고는 문턱 형태의 발끝막이판이 주변에 설치되지 않은 개구부(발판 바닥에 뚫린 구멍)에서 추락해 일어났고, 철골 조립 작업을 하다가 작업 순서를 지키지 않아 하중이 한쪽으로 쏠려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추락해 세 번째 숨졌다.
기자를 세 번 죽인 안전사고는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VR·Virtual Reality)에서 발생했다. VR 안전교육 프로그램 속에서다. 현실의 건설 현장을 본떠 재현한 인공현실이다. 하지만 외부 자극을 차단하고 눈앞에 가상세계를 보여주는 기기를 머리에 쓰면 실제처럼 생생하다. 고개를 돌리는 대로 공사 현장이 상하좌우 360도로 보인다. 공사 현장 관리사무실에서 걷고 있지만 가상현실에서는 높은 곳의 발판을 아슬아슬하게 걷는다. 어지러워 몸을 휘청거릴 정도다. 추락 후 설치되지 않았던 안전시설물이 붉은색 그래픽으로 표시되고 안전수칙 상식이 눈앞에 퀴즈 형식으로 나타난다.
VR 안전교육 프로그램은 2012년부터 민간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개발했다.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을 활용한 프레젠테이션(PPT)이나 동영상으로 진행되는 기존 교육 방식만으로는 근로자의 주의를 끌기 어려워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부터다. 최근에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도 VR 안전교육 프로그램 20여 개를 자체 개발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29일 사업비 50억 원 이상의 시가 추진하는 신규 건설 현장에는 VR 안전교육을 올해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별내선 공사 현장에 시범 도입해 운영해 본 결과 현장 근로자 48명 가운데 40명이 ‘매우 만족했다’고 응답했다. 시공사인 쌍용건설의 현장 관계자는 “빨리빨리 문화가 현장에 만연하다 보니 작업에 방해가 되는 시설물을 치우는 데 게으른 것 등 안전을 무시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VR 안전교육으로나마 사고를 경험하면 더 주의를 기울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건설 안전사고가 대부분 발생하는 영세한 공사 현장은 안전 사각지대가 되기 쉽다. 서울시가 사업을 추진하더라도 사업비가 50억 원 미만인 곳은 VR 안전교육은 도입되지 않는다. 올해 시가 착공하는 신규 사업장 20곳 중 사업비가 50억 원 미만인 곳은 4곳이다. 공사 중인 곳까지 합쳐 현장 98곳 가운데 49곳이 해당한다. 서울시는 “소규모 공사 현장을 방문하는 이동식 VR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검토하겠다”며 “VR 기기 구매에만 400만 원이 넘게 드는 예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VR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시에서 자체 개발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등 세부사항을 조만간 결정할 예정이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