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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인공지능이 새로운 스포츠를 만들다

최고관리자
2019-06-03 14:32 8,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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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원이 그려진 잔디밭 위를 열 명 남짓한 운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닌다. 패스를 주고받으며 원 위에 세워진 막대 사이로 공을 집어넣으려 애쓰는 모습이 크리켓 같기도 하다. 날아다니는 공 모양은 미식축구나 럭비의 그것과 똑 닮았다. 이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바쁘게 움직이는 스포츠, 스피드게이트(Speedgate)를 즐기는 중이다.

[KISTI과학향기]인공지능이 새로운 스포츠를 만들다

◇AI가 스포츠를 발명하다

 스피드게이트는 컴퓨터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엔비디아(Nvidia)와 광고 및 디자인 대행 회사 '아카(AKQA)'가 협업하여 개발한 새로운 장르의 스포츠다. 두 회사는 럭비, 하키, 축구, 크리켓 등 400종류가 넘는 스포츠에서 수집한 7000개가 넘는 규칙을 순환 신경망 네트워크(RNNs:Recurrent Neural Networks)와 심층 돌림형 생성적 적대 신경망 네트워크(DCGAN:Deep Convolutional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에 입력해 자사 인공지능을 학습시켰다.

RNNs는 입력된 정보를 해석할 때 과거에 입력한 기억 정보를 불러와 참조하는 방식이다. DCGAN은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그것과 매우 유사한 가짜 정보를 만들고 이를 평가하는 과정을 반복해 실제와 매우 유사한 대체재를 생산하는 독립적 학습법이다.

인공지능이 만든 스포츠, 스피드게이트를 실제로 플레이해보고 있다. (출처: AKQA)
<인공지능이 만든 스포츠, 스피드게이트를 실제로 플레이해보고 있다. (출처: AKQA)>


 

 


연구자들은 두 가지 방식을 통해 종전의 스포츠와 유사하지만 조금씩 다른 1000개의 스포츠를 새롭게 창조해냈다. 인공지능이 제안한 1000개의 새로운 스포츠 중 실제로 인간이 플레이할 만한 것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받은 정보는 오로지 스포츠 규칙뿐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안전이나 활동 능력을 고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활동량이 너무 적어 플레이해 봤자 재미없을 것이 뻔한 규칙도 문제였다. 연구진은 인공지능의 제안을 검토한 후 실제로 플레이할 수 있는 열 가지 스포츠를 선별했다. 그중 세 가지를 뽑아 실제로 플레이해본 후 최종적으로 스피드게이트를 차세대 스포츠로 낙점했다.

◇스피드게이트를 즐기는 방법

 스피드게이트는 럭비, 축구, 핸드볼, 크리켓을 한데 섞은 듯한 스포츠다. 여섯 명의 필드 플레이어가 한 팀을 이루고 7분씩 세 번의 피리어드를 거쳐 총 21분 동안 경기를 한다. 표준 필드 규격은 폭 18m, 길이 58m이지만 축구나 럭비처럼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다.

앞으로 스피드게이트 전용 공을 개발할 예정이지만 지금은 연습용 럭비공을 사용하고 있다. 럭비공을 던져서 패스하거나 발로 차는 동작이 주된 활동이다. 손으로 주고받는 패스는 반드시 플레이어 가슴보다 낮은 높이에서 출발해야 한다. 발로 차는 경우에는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한 플레이어는 3초 이상 공을 소유할 수 없다. 짧은 순간 다양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시간에 쫓기며 플레이해야 하기 때문에 '스피드게이트'란 이름이 붙었다.

필드 위 세 곳에 큰 원을 그려 넣는다. 우리 편 진영에 하나, 상대편 진영에 하나, 그리고 그 사이 가운데에 하나씩이다. 그리고 그려 넣은 원 위에 각각 1.8m 높이의 막대 한 쌍을 세운다. 상대방 진영의 막대 사이에 슛을 시도해 공이 그사이를 통과하면 득점이다. 막대 사이에는 한 명의 수비수를 세워 놓을 수 있다. 방향에 관계없이 막대 사이로 공을 통과시키면 2점을 얻고, 그 공을 반대편에 위치한 아군 선수가 받아 재차 집어넣으면 3점을 얻는다.

스피드게이트 경기장의 모습. (출처: AKQA)
<스피드게이트 경기장의 모습. (출처: AKQA)>

다만 득점을 위해서는 반드시 그보다 앞서 중앙 원에 세워진 막대 사이를 통과시켜야 한다. 중앙에 그려진 원 안에는 어떠한 플레이어도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중앙 원을 둘러싸고 치열한 전략 싸움이 펼쳐진다.

◇스피드게이트와 AI 스포츠의 미래

드론 레이스는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전동 이륜차, 세그웨이를 이용한 폴로도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점점 자리를 잡는 추세다.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종전과는 다른 장르의 스포츠를 개발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이 아닌 AI가 고안해냈다는 점에서 스피드게이트는 특별하다.

스피드게이트를 개발한 아카는 미국 오리건주를 기반 삼아 아마추어 리그를 운영할 계획이다. 스피드게이트 보급을 위해 전용 홈페이지를 개설해 운영 중이며 스포츠팀을 창단하고 운영하려는 많은 사람에게 전용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

스피드게이트는 미래에 AI가 고안해 낼 수많은 스포츠와 놀이 문화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대중 인지도를 높여갈지, 과연 우리 사회에 녹아들어 보편화할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 AKQA의 말처럼 인공지능이 제안한 스포츠가 빠르고, 재미있고, 활동적이라면 머지않은 미래에 스피드게이트 프로 선수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현대인의 삶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어 줄 AI 스포츠의 흥행을 기대해보자.

글: 이형석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