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 연구 윤리 쇄신못하면 R&D 혁신도 없다
최고관리자
2018-08-2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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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윤리 훼손이 심각하다. 부적절한 연구비 집행, 미성년 자녀 논문 공저자 포함에 이어 사이비 국제학술지 논문 게재, 유령 학술단체학회 참가 등 부정행위가 연이어 드러났다. 과거에는 일부 연구자에 국한한 얘기로 여겼지만 지금은 전 연구자가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20조원 시대를 눈앞에 뒀지만 연구문화 쇄신 없인 혁신도 어렵다. 연구계는 낡은 연구비 관리 시스템과 연구비 소진 관행을 개선하고 무엇보다 연구자 스스로 윤리 의식을 강화하는 쇄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연이은 비위 드러난 연구계
연구계는 올해 연이은 부정, 비리 적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연초 대학 교수가 자신의 논문에 미성년 자녀를 공저자로 끼워 넣은 사례가 드러났다. 교육부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발표된 교수 논문에 미성년 자녀 포함 여부를 조사하고 1월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9개 대학에서 82건이 부정 사례가 발생했다.
대학과 중고등학교 연계를 통해 연구와 논문지도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례가 16개교 39건, 학교 교육과정과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추진한 경우가 19개교, 43건이었다. 4월 2차 조사 결과를 통해 56건이 추가로 파악됐다. 지난 10년 간 총 138건 논문에 미성년 자녀가 공저자로 등록됐다. 미성년 자녀를 교수 부모 논문에 공저자로 등록해 입시용 경력(스펙) 쌓기로 활용한 '꼼수' 사례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미성년자 논문 작성은 금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에 기여하지 않은 자를 저자로 표시하는 것은 명백한 연구부정행위다.
연구 윤리 논란은 최근 '부실 학회'로 이어졌다. 국내 상당수 연구자가 와셋(WASET,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 등 비정상 학술 활동에 참석한 뒤 이를 실적으로 등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연구재단이 한국연구업적통합정보시스템(KRI) 등록자를 대상으로 와셋 참석 실태 조사를 한 결과, 2008년부터 올해 상반기 까지 한번이라도 참석 경험이 있는 연구자는 482명, 참여횟수는 1038회다. 한 사람이 평균 2회 이상 참석했다는 의미다. 학회 참석은 정부에서 지급받은 연구비로 가는 경우가 많다. 알고도 와셋에 참석했다면 사실상 연구비 유용이다.
드러난 현황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학회 참석 여부는 KRI 의무 기재 사항이 아니다. 이번 결과는 최소 사례만 집계된 수치다. 기타 부실 학회를 포함하면 참석자 규모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비 유용 사건도 심심치 않게 터졌다. 부산의 한 사립대학 교수가 제자 연구비 수천만원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크고 작은 비위가 드러났다.
대학교수 시절 연구비 유용 혐의를 받은 서은경 한국창의재단 이사장 사임으로 분위기는 더 뒤숭숭해졌다. 서 이사장은 4차 산업혁명위원회 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직할기관 평가위원장 등으로 현 정부 과학기술정책 수립에 참여한 과기계 핵심 인사다.
서 이사장이 전북대 물리학과 교수 재직 시절 지도 학생이던 A연구원은 20여 차례에 걸쳐 총 1200만원 상당 연구비를 허위로 신청했다. A씨는 서 이사장의 지도 학생이 학생 연구원으로 일하며 받은 인건비와 연구장학금 6000여만원을 연구실 경비로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서 이사장은 유용 논란이 불거지자 20일 사임의사를 밝혔다. 의혹에 대해서는 “30년간 연구자로서 연구윤리를 잘 지키며 투명하고 청렴하게 연구에 임했다”면서 “사익을 위해 어떠한 부정행위에도 관여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출연연 관계자는 “연구비가 풍부한 연구자 가운데 연구와 무관한 항목에 지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더 큰 문제는 드러나지 않고 작은 부정이 연구현장에 만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R&D 예산 20조 시대…연구 문화 혁신 필수
내년 국가 R&D 예산은 사상 처음 2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GDP 대비 총 R&D 투자 규모, 절대 규모 측면에서 세계 5위권 수준이다. 그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고비용 저성과' 구조를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도 R&D 성과 고도화를 위한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가 R&D 틀을 뜯어 고치는 지금, 연구계 또한 스스로 윤리 의식을 강화하는 등 연구문화를 쇄신해야 진정한 R&D 혁신이 가능하다.
연구계는 현재 위기가 낡은 연구 관행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고 봤다. 연구자가 직접 연구비를 관리 정산하고, 검증 없이 학회 참석을 권장하는 연구풍토가 문제를 키웠다는 인식이다.
우리 대학 R&D 현장은 연구자가 연구비를 직접 관리한다. 먼저 연구비를 집행하고 이를 산학협력단 등을 통해 정산하는 구조다. 이때 학회 참석, 물품 구입 등 증빙절차가 있지만 이를 명확하게 들여다볼 관리시스템은 미흡하다. 연구비 계약이 연단위로 이뤄져 남는 연구비를 처리하기 위해 불필요한 학회에 참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대학교수는 “선집행, 후증빙 시스템으로 연구비를 관리하는데 검증 과정이 취약하다. 연구자가 연구비를 사용하고, 스스로 검증도 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연구자가 연구비 정산 등 행정업무를 수행하면서 자의적으로 연구비를 관리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면서 “연구자와 연구 행정을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정혜 연구재단 이사장은 “대학이 산학협력단을 통해 연구비 관리를 하는데, 산학협력단 인적 구성, 서비스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곳이 있다”면서 “산학협력단 기능을 고도화할 수 있도록 연구재단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 평가시 학회 참석 횟수를 정량평가에 반영하는 관행도 문제를 키웠다. 학회 검증없이 참석만 유도하면서 부실 학회 참석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안화용 연구재단 기조실장은 “내부 견제 시스템 즉, 해외 출장 심의위원회 같은 조직과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면서 “사전에 해외 학회 검증을 강화하면 부실 학회 참석, 연구비 유용 등을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안 실장은 “무엇보다 연구 관련 유의사항(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면서 바뀌는 환경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연구계의 신속한 정보 교류 시스템도 필요하다. 학술활동, 학회를 '가짜'로 규정짓기가 쉽지 않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탓이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도 '의심스러운(questionable)' '부실' 학회 표현을 사용한다.
애초 문제가 된 BK21플러스 사업을 통한 와셋 참석 또한 규정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BK21플러스 규정에 따르면 대학원생이 구두발표 논문 인문계열 10건(과학기술 계열 20건) 이상, 4개국 이상 참가, 구두 발표자중 외국인 50% 이상을 충족하는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할 경우 경비를 지원받는다. 와셋을 포함해 상당수 학회가 기준을 만족한다.
김승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은 “논문을 가짜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든 논문을 5개 학회에 제출했더니 4개 학회가 인정한 사례도 있다”면서 “이 가운데 4개 학회가 허위 학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곳으로 나타났다. 연구계가 신속한 정보 교류 체계를 만들어 스스로 참석 여부를 결정하는 자정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연구윤리 제정에 착수했다. 과학기술 및 법조계, 정부 전문가 등 43명으로 구성된 연구윤리 전문가 포럼을 출범시켰다.
김명자 과총 회장은 “무엇보다 연구자 윤리 의식이 중요하다. 연구자가 경각심과 자정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면서 “앞으로는 비리·부정을 저지르지 않은 학회에 더 많은 지원을 하는 방안 등을 시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최호 산업정책부 기자
◇연이은 비위 드러난 연구계
연구계는 올해 연이은 부정, 비리 적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연초 대학 교수가 자신의 논문에 미성년 자녀를 공저자로 끼워 넣은 사례가 드러났다. 교육부는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발표된 교수 논문에 미성년 자녀 포함 여부를 조사하고 1월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9개 대학에서 82건이 부정 사례가 발생했다.
대학과 중고등학교 연계를 통해 연구와 논문지도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례가 16개교 39건, 학교 교육과정과 관계없이 자체적으로 추진한 경우가 19개교, 43건이었다. 4월 2차 조사 결과를 통해 56건이 추가로 파악됐다. 지난 10년 간 총 138건 논문에 미성년 자녀가 공저자로 등록됐다. 미성년 자녀를 교수 부모 논문에 공저자로 등록해 입시용 경력(스펙) 쌓기로 활용한 '꼼수' 사례가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미성년자 논문 작성은 금지되지 않았다. 그러나 연구에 기여하지 않은 자를 저자로 표시하는 것은 명백한 연구부정행위다.
연구 윤리 논란은 최근 '부실 학회'로 이어졌다. 국내 상당수 연구자가 와셋(WASET,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 등 비정상 학술 활동에 참석한 뒤 이를 실적으로 등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연구재단이 한국연구업적통합정보시스템(KRI) 등록자를 대상으로 와셋 참석 실태 조사를 한 결과, 2008년부터 올해 상반기 까지 한번이라도 참석 경험이 있는 연구자는 482명, 참여횟수는 1038회다. 한 사람이 평균 2회 이상 참석했다는 의미다. 학회 참석은 정부에서 지급받은 연구비로 가는 경우가 많다. 알고도 와셋에 참석했다면 사실상 연구비 유용이다.
드러난 현황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학회 참석 여부는 KRI 의무 기재 사항이 아니다. 이번 결과는 최소 사례만 집계된 수치다. 기타 부실 학회를 포함하면 참석자 규모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비 유용 사건도 심심치 않게 터졌다. 부산의 한 사립대학 교수가 제자 연구비 수천만원을 빼돌려 개인적으로 유용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크고 작은 비위가 드러났다.
대학교수 시절 연구비 유용 혐의를 받은 서은경 한국창의재단 이사장 사임으로 분위기는 더 뒤숭숭해졌다. 서 이사장은 4차 산업혁명위원회 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직할기관 평가위원장 등으로 현 정부 과학기술정책 수립에 참여한 과기계 핵심 인사다.
서 이사장이 전북대 물리학과 교수 재직 시절 지도 학생이던 A연구원은 20여 차례에 걸쳐 총 1200만원 상당 연구비를 허위로 신청했다. A씨는 서 이사장의 지도 학생이 학생 연구원으로 일하며 받은 인건비와 연구장학금 6000여만원을 연구실 경비로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서 이사장은 유용 논란이 불거지자 20일 사임의사를 밝혔다. 의혹에 대해서는 “30년간 연구자로서 연구윤리를 잘 지키며 투명하고 청렴하게 연구에 임했다”면서 “사익을 위해 어떠한 부정행위에도 관여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출연연 관계자는 “연구비가 풍부한 연구자 가운데 연구와 무관한 항목에 지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더 큰 문제는 드러나지 않고 작은 부정이 연구현장에 만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R&D 예산 20조 시대…연구 문화 혁신 필수
내년 국가 R&D 예산은 사상 처음 2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GDP 대비 총 R&D 투자 규모, 절대 규모 측면에서 세계 5위권 수준이다. 그동안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고비용 저성과' 구조를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다. 정부도 R&D 성과 고도화를 위한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가 R&D 틀을 뜯어 고치는 지금, 연구계 또한 스스로 윤리 의식을 강화하는 등 연구문화를 쇄신해야 진정한 R&D 혁신이 가능하다.
연구계는 현재 위기가 낡은 연구 관행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고 봤다. 연구자가 직접 연구비를 관리 정산하고, 검증 없이 학회 참석을 권장하는 연구풍토가 문제를 키웠다는 인식이다.
우리 대학 R&D 현장은 연구자가 연구비를 직접 관리한다. 먼저 연구비를 집행하고 이를 산학협력단 등을 통해 정산하는 구조다. 이때 학회 참석, 물품 구입 등 증빙절차가 있지만 이를 명확하게 들여다볼 관리시스템은 미흡하다. 연구비 계약이 연단위로 이뤄져 남는 연구비를 처리하기 위해 불필요한 학회에 참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대학교수는 “선집행, 후증빙 시스템으로 연구비를 관리하는데 검증 과정이 취약하다. 연구자가 연구비를 사용하고, 스스로 검증도 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명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연구자가 연구비 정산 등 행정업무를 수행하면서 자의적으로 연구비를 관리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면서 “연구자와 연구 행정을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정혜 연구재단 이사장은 “대학이 산학협력단을 통해 연구비 관리를 하는데, 산학협력단 인적 구성, 서비스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곳이 있다”면서 “산학협력단 기능을 고도화할 수 있도록 연구재단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 평가시 학회 참석 횟수를 정량평가에 반영하는 관행도 문제를 키웠다. 학회 검증없이 참석만 유도하면서 부실 학회 참석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안화용 연구재단 기조실장은 “내부 견제 시스템 즉, 해외 출장 심의위원회 같은 조직과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면서 “사전에 해외 학회 검증을 강화하면 부실 학회 참석, 연구비 유용 등을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안 실장은 “무엇보다 연구 관련 유의사항(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면서 바뀌는 환경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연구계의 신속한 정보 교류 시스템도 필요하다. 학술활동, 학회를 '가짜'로 규정짓기가 쉽지 않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탓이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도 '의심스러운(questionable)' '부실' 학회 표현을 사용한다.
애초 문제가 된 BK21플러스 사업을 통한 와셋 참석 또한 규정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BK21플러스 규정에 따르면 대학원생이 구두발표 논문 인문계열 10건(과학기술 계열 20건) 이상, 4개국 이상 참가, 구두 발표자중 외국인 50% 이상을 충족하는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할 경우 경비를 지원받는다. 와셋을 포함해 상당수 학회가 기준을 만족한다.
김승조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부원장은 “논문을 가짜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통해 만든 논문을 5개 학회에 제출했더니 4개 학회가 인정한 사례도 있다”면서 “이 가운데 4개 학회가 허위 학회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곳으로 나타났다. 연구계가 신속한 정보 교류 체계를 만들어 스스로 참석 여부를 결정하는 자정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은 연구윤리 제정에 착수했다. 과학기술 및 법조계, 정부 전문가 등 43명으로 구성된 연구윤리 전문가 포럼을 출범시켰다.
김명자 과총 회장은 “무엇보다 연구자 윤리 의식이 중요하다. 연구자가 경각심과 자정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면서 “앞으로는 비리·부정을 저지르지 않은 학회에 더 많은 지원을 하는 방안 등을 시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최호 산업정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