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한겨레]사물인터넷·빅데이터 ‘차세대 먹거리’ 육성 명분에 ‘정보인권 침해 위험’ 대책은 뒷전

최고관리자
2015-02-25 08:48 8,984

본문

KT·경기 어린이집 사물인터넷 사업
CCTV 영상-스마트폰 실시간 연결
 교사 인권과 ‘잊힐 권리’ 훼손 논란
“모바일 생중계 기능 제외를” 지적

 정부 ‘빅데이터 정보보호’ 지침도 비식별화 작업 거치면 괜찮다며 되레 개인정보 불법 이용 길 터줘 2030년 어느 날, 아이돌 그룹 멤버 ㅋ씨가 “챙피해서 못살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모습을 감췄다. 전 날 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본 어린 시절 모습 영상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친구 어머니가 딸의 어린이집 폐쇄회로화면(CCTV) 영상을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놨는데, 화면 한켠에 자신이 옷을 갈아입느라 벌거숭이가 된 장면이 있었다. 영상에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친구 어머니의 ‘친절한’ 설명까지 붙어있었다.
먼 미래의 남 얘기 같지만, 정부와 기업들이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를 ‘차세대 먹거리’로 꼽아 앞뒤 가리지 않고 조기 활성화와 사업화를 밀어부치는 지금 상황으로 볼 때 앞으로 누구나 이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모두 정보인권 침해 위험이 높지만, 정부와 기업 모두 충분한 대비책 없이 산업화에만 박차를 가하는 탓이다. 머지않아 ‘정보인권 침해 선진국’ 소리를 들을 것이란 경고까지 나온다.
케이티(KT)는 경기도와 손잡고, 사물인터넷 기술로 ‘아이는 안전하고 부모는 안심하는’ 어린이집 구현 사업을 추진한다. 어린이집에 시시티브이를 설치하고, 찍힌 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아이 위치 실시간 확인 기능도 제공된다. 황창규 케이티 회장은 지난 16일 경기도 분당 케이티 사옥에서 남경필 경기도 지사를 만나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사물인터넷을 이용한 보육안전 서비스를 새로운 성장모델로 꼽고 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이에 대해 “스마트폰을 통해 어린이집 시시티브이 영상을 볼 수 있게 하는 기능이 정보인권 침해 재앙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어린이집 교사의 인권 침해는 물론이고, 아이들의 ‘잊힐 권리’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오줌을 싸거나 음식물을 쏟아 옷을 갈아입히는 등 아이들이 커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습들이 흔히 있는데, 라이브 기능 탓에 이런 모습을 담은 영상이 삭제되지 않고 남아있다고 유출될 수 있단다.
실제로 구글 등에는 유치원 시절 사진이 검색되지 않게 해 달라거나 지워달라는 요청이 늘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영상 서비스 업체의 서버(컴퓨터)가 해킹을 당했는데, 이 때 유출된 유치원생들의 모습이 음란 사이트의 배경화면으로 사용돼 정부가 폐쇄 명령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장여경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어린이집 시시티브이 영상을 부모 스마트폰으로 보내주는 서버가 해킹을 당하거나, 부모 중 일부가 아이의 어린 시절 모습을 남긴다며 스마트폰에 저장해 갖고 있다가 유출될 수 있다”며 “국회 보건복지위가 어린이집마다 시시티브이 설치를 의무화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심의하고 있는데, 반드시 어린이집 근무자와 부모들의 동의를 받고, 라이브 기능은 제외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케이티는 이런 우려에 대해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지난해 12월 내놓은 ‘빅데이터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도 정보인권 침해 우려를 낳고 있다. 방통위는 “개인정보 오·남용 방지와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묘안”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시민단체들은 “개인정보 불법 이용 길을 터준 꼴”이라고 주장한다. 김보라미 변호사(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위원)는 “가이드라인은 ‘비식별화’와 ‘정보처리시스템’ 등 국제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용어를 사용해 사실상 ‘프로파일링’을 무제한 허용하는 등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배된다. 개인정보보호법은 다른 정보와 결합돼 개인 식별이 되면 개인정보로 간주하는데 비해, 가이드라인은 다시 비식별화해서 쓰면 괜찮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지향의 이은우 변호사는 “가이드라인은 개인정보인 것을 개인정보가 아닌 것처럼 쓰게 한다. 기업들이 이대로 했다가 소송을 당할 경우, 엄청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